주토피아 2 (갈라파티, 사회비판, 가족관람)
애들 영화는 그냥 애들이나 보면 되는 거 아닐까요? 저도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1살 딸과 6살 아들을 데리고 주토피아 2 시사회에 다녀온 뒤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어른인 저도 영화가 끝난 후 꽤 오랫동안 멍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과 나눈 대화는 이번 관람의 진짜 하이라이트였습니다.
![]() |
|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 2 공식포스터 |
갈라파티 장면, 왜 11살짜리가 더 잘 봤을까
주토피아 2는 2016년 전작이 끝난 직후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주디 홉스(지니퍼 굿윈)와 닉 와일드(제이슨 베이트먼)가 수십 년 만에 주토피아에 나타난 첫 번째 뱀과 얽힌 대형 사건을 맡게 된다는 큰 줄기는 생각보다 꽤 묵직한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보다 11살짜리 딸이 더 예리하게 잡아낸 장면이 있었습니다. 바로 주디와 닉이 툰드라 지역의 갈라 파티에 몰래 잠입하는 시퀀스입니다. 딸은 "주디가 민소매 드레스를 입고도 전혀 안 추워하는 게 너무 웃겼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볼 때 '프로덕션 디자인(Production Design, 영화의 공간과 배경 전체를 설계하는 시각 예술 분야)이 정말 잘 됐다'고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트루 라이즈를 연상케 하는 첩보 액션의 긴장감, 장면 초반에 심어놓은 사소한 농담이 후반에 결정적인 웃음 포인트로 되돌아오는 복선 구조, 이런 요소들을 저는 비평가적 시각으로 분석하며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그냥 순수하게 가장 재밌었다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두 시선이 같은 장면에서 만난다는 게 이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의 비주얼도 눈에 띄게 발전했습니다. 컬러 그레이딩(Color Grading, 영상의 색감과 분위기를 조정하는 후반 작업)만 봐도 전작보다 조명 효과가 훨씬 야심 차게 쓰였고, 그 10년 사이 애니메이션 기술이 얼마나 진보했는지를 이 갈라 시퀀스 하나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장면 하나에 주토피아 세계관의 장점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회비판, 애들한테도 전달됐을까
여기서 솔직하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이 영화의 사회적 메시지를 실제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건 어른들의 자기만족적인 독해에 불과한 걸까요?
주토피아 2는 인종차별, 제도적 편견, 세대 간 약탈, 문화 말살 같은 이슈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내러티브(Narrative,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과 구조 전체를 가리키는 개념)가 꽤 촘촘하게 짜여 있어서, 단순히 동물들이 범죄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십 년간 도시를 장악해 온 스라소니 가족의 부패, 억울하게 추방당한 뱀의 명예 회복, 전직 영화스타 출신 말 시장 역할의 패트릭 워버튼까지, 새로운 캐릭터들이 이 주제들을 꽤 다양한 각도에서 건드립니다.
제가 직접 옆에서 지켜봤는데, 6살 아들이 가장 빵 터진 두 번째 장면은 닉 와일드가 "으악! 독사(Viper)다!"라고 소리치는 부분이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여기에는 맥락상 결정적인 개그가 숨어 있습니다. 이 순간에 아들이 그토록 크게 웃었다는 건, 아이 나름대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만 제 솔직한 시각에서는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회 문제를 한꺼번에 담으려다 보니, 어떤 이슈는 깊이 파고들기보다 그냥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지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경찰이 소외된 구역을 급습하는 장면은, 최근의 현실과 맞물려 제작진이 의도한 것보다 훨씬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장면에서 주디 홉스의 낙관적 태도가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반응은 명확했습니다. 딸은 영화를 보면서 정확히 2.5번 울었다고 했습니다.
- 한 번은 슬픈 장면에서 흘린 눈물
- 한 번은 기쁜 장면에서 흘린 눈물
- 나머지 0.5번은 무서운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감정이었어?"라고 물으니 "그냥 모든 감정이 다 그랬던 것 같아"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이가 이 영화 안에서 다양한 감정의 결을 느꼈다는 게, 저에게는 영화가 제 역할을 다했다는 신호로 읽혔습니다. 6살 아들은 딱 한 번, 기쁜 장면에서만 울었습니다.
한편 아이오와 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의 연구에 따르면 아동은 감정적 서사를 통해 공감 능력을 습득하는 데 더 효과적으로 반응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오와 대학교 공식 사이트에서 관련 연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주토피아 2의 감정적 장면들은 단순한 연출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가족관람, 집에 돌아온 뒤가 진짜였습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로만 보면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후반부에 맥거핀(MacGuffin,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 소재이지만 그 자체보다 등장인물들의 반응이 더 중요한 장치)을 과도하게 설명하는 구간이 있는데, 회상 장면을 반복해가며 계획을 줄줄 읊어대는 이 대목은 솔직히 시계를 확인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충분히 이해가 되는 내용을 억지로 설명하는 건 각본상 불필요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반면 서브텍스트(Subtext, 대사나 장면의 표면 아래 숨겨진 의미와 맥락)가 가장 잘 살아있는 부분은 역시 닉과 주디의 티키타카입니다. 두 캐릭터가 주고받는 대화의 리듬은 전작과 비교해도 전혀 퇴색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구석구석 숨겨진 동물 말장난들, 예를 들어 '어무스 부쉬(A-Moose Bouche, 프랑스어 아뮤즈 부쉬의 동물 버전 패러디)'나 '양튜브(Ewe Tube, 유튜브의 양 버전 패러디)' 같은 언어유희가 배경에 가득 깔려 있어, 어른과 아이가 같은 화면에서 각자 다른 포인트에서 웃을 수 있는 구조가 완성됩니다. 딸이 말장난을 재밌게 즐겼다고 했는데, 제가 옆에서 쉬지 않고 떠들어댄 덕분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떤 장면이 무서웠는지, 언제 기쁘고 언제 슬펐는지 아이들과 하나씩 꺼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저에게는 영화 본편보다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캐릭터 중 키 호이 콴, 데이비드 스트라탄, 앤디 샘버그가 연기한 인물들에 대한 인상도, 집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아이들 입에서 다 나왔습니다. 디즈니 공식 사이트에서 캐릭터 정보를 미리 확인하고 가면 관람이 더 풍성해질 것 같습니다. 디즈니플러스 공식 사이트에서 관련 콘텐츠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주토피아 2는 모든 걸 완벽하게 해결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어떤 부분은 깊이를 희생했고, 설명 과잉의 구간은 분명히 옥의 티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 누가 나서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주디의 신념이 과연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가 하는 질문은, 극장 밖에서도 한동안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보고 집에 돌아와 그 질문을 같이 꺼내보고 싶다면, 이 영화는 꽤 좋은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 참고: https://kr.ign.com/zootopia-2/14053/review/jutopia-2-ribyu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