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 스토리 5 (그래픽, 악당분석, 스크린타임)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토이 스토리 5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반갑지 않았습니다. 3편과 4편이 이미 완벽한 결말을 맺은 터라 "굳이 왜?"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11살 딸과 7살 아들을 데리고 시사회장을 나서면서, 그 의심이 조금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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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5 공식포스터 |
그래픽: 실사인 줄 알았습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하늘과 나무, 스쿨버스가 잡히는 도입부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눈을 비볐습니다. "이거 혹시 실사 촬영 아냐?" 하는 착각이 잠깐 들었으니까요. 픽사는 매 작품마다 포토리얼리즘(photoреalism), 즉 컴퓨터 그래픽이 실제 사진처럼 보이는 수준의 묘사력을 끌어올려 왔는데, 이번 5편 역시 그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포토리얼리즘이란 쉽게 말해 CG가 더 이상 "만화 같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실제 눈으로 본 풍경처럼 받아들여지는 수준을 뜻합니다.
제 옆에 앉아 있던 아들이 어두운 극장 안에서 제 수첩을 낚아채더니 삐뚤삐뚤 "더 조은 그래픽"이라고 써서 돌려줬습니다. 철자는 틀렸지만, 요점은 정확했습니다. 렌더링(rendering), 즉 3D 데이터를 실제 이미지로 변환하는 처리 기술 측면에서 이번 편은 전작인 4편이 보여줬던 도약에는 못 미치더라도, 캐릭터 표정 하나하나에 살아있는 듯한 질감이 느껴지는 건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과연 픽사는 앞으로 얼마나 더 현실과의 경계를 좁힐 수 있을까요? 솔직히 이 부분만큼은 다음 편이 기대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악당 분석: 이번 악당은 왜 미워하기 어려울까
저는 개인적으로 픽사 영화의 핵심이 악당 설계에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번 5편의 사실상 대립 구도를 형성하는 캐릭터는 태블릿 형태의 '릴리패드'(그레타 리 목소리)입니다. 릴리패드는 보니의 첫 태블릿으로 등장해, 보니를 또래 집단에 연결해주려 하지만 결국 온라인 왕따의 통로가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릴리패드는 진짜 악당일까요? 딸아이의 대답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차 안에서 "릴리패드가 나쁜 것 같아?"라고 물었더니, 딸은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누가 진짜 좋은 사람인지 분별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11살짜리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딸아이의 분석은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등장인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는 시각에서도 제법 날카로웠습니다. 캐릭터 아크가 단순히 "처음엔 착하다가 나중엔 나쁘다"거나 그 반대로만 흘러가는 캐릭터는 결국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건데, 딸아이는 그걸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겁니다. 실제로 딸이 토이 스토리 시리즈 중 3편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는데, 이유를 들어보니 "악당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나쁘기만 해서"였습니다. 꽤 설득력 있는 비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이번 5편의 신규 캐릭터들, 배변 훈련용 장난감 스마티 팬츠(코난 오브라이언 목소리), 어린이용 디지털카메라 스내피, 하마 모양 지도 기기 아틀라스는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화면에 에너지를 불어넣습니다. 이 캐릭터들이 자신들의 존재 가치에 대해 소름 돋을 정도로 진지하게 따지는 장면은 제 취향을 정확히 저격했습니다. 픽사가 장난감이라는 소재를 통해 던지는 실존주의적 질문, 그러니까 "나는 왜 여기 있는가?"라는 물음은 어른이 봐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번 편이 단순한 프랜차이즈 연장이 아니라 제대로 된 악당 설계를 고민했다는 점은 분명히 장점입니다. 다만, 이 설계가 전반부에서 충분히 살아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스크린 타임: 저도 한 대 맞았습니다
이 영화가 건드리는 가장 큰 주제는 결국 스크린 타임(screen time), 즉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스크린 타임은 아동 발달 연구에서 수면의 질, 집중력, 사회성과 직접 연결된다고 알려진 개념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5세 미만 아동의 스크린 타임을 하루 1시간 이내로 권고하고 있으며, 초등학생 이상도 비슷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장면 중 재택근무 부모가 줌(Zoom) 화상 회의를 하느라 아이를 방치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도 집에서 서재에 틀어박혀 "지금 음소거 상태예요!"를 반복하는 사람이다 보니, 스크린이 번쩍이는 그 장면에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아들은 옆에서 "아빠 일할 때랑 100% 똑같아서 하나도 안 웃겼어요"라고 팩트를 투척했고, 저는 그냥 웃어 넘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영화 전반부는 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픽사 특유의 보편적 공감을 서서히 쌓아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만 본다"는 식의 훈계조로 흐르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제 경험상 이런 방식은 관객을 감동시키기보다 방어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처럼 말이죠.
그럼에도 후반부는 달랐습니다. 영화는 마침내 기술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몰아붙이는 대신, 연대와 소통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묻기 시작합니다.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즉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활용하는 능력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것이 후반부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살아납니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유니세프(UNICEF)의 디지털 리터러시 관련 자료에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는 아이들에게 스크린 타임을 대폭 줄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딸은 숙제 검사 받는 기분이라며 삐죽거렸고, 아들은 토이 스토리 6에서 숟가락 캐릭터 스푸니가 나오면 좋겠다고 신나게 떠들며 제 선언을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어쩌면 그게 가장 솔직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가 남긴 실질적인 고민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아이에게 태블릿을 쥐여주기 전에, 어떤 공간에서 누구와 연결되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 스크린 타임 자체보다, 화면 앞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 부모의 스크린 타임도 아이에게 그대로 노출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토이 스토리 5는 전반부의 답답함을 후반부가 충분히 만회하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에 10점 만점에 7점을 줬습니다. 초반의 훈계조 연출이 아쉽지만, 매력적인 신규 캐릭터들과 후반부의 따뜻한 마무리는 그 아쉬움을 상당 부분 덮어줍니다. 극장을 나서면서 아이들이 "계속 토이 스토리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저도 솔직히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아직 이 장난감 친구들과 작별할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면, 일단 극장에 가보시는 걸 권합니다.
--- 참고: https://kr.ign.com/toy-story-5/15018/toi-seutori-5-rib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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