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터: 죽음의 땅 (반전시점, 덱과티아, 야우차세계관)
괴물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고 그 괴물한테 정이 들 수 있을까요? 저도 솔직히 그럴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시험도 끝난 주말에 그냥 에어컨 바람이나 쐬자는 마음으로 극장에 앉았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친구랑 같이 "생각보다 진짜 재밌는데?"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프레데터 시리즈 7편, 그리고 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프레데터 종족인 야우차(Yautja)를 주인공 자리에 앉힌 '프레데터: 죽음의 땅'을 직접 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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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프레데터 죽음의 땅 공식포스터 |
반전시점 — 맨날 빌런이던 놈이 주인공이 되면 어떻게 될까
프레데터 시리즈를 떠올리면 대부분 비슷한 이미지가 떠오를 겁니다. 잔혹한 우주 사냥꾼이 인간들을 무참히 도살하고, 트로피로 머리뼈를 들고 다니는 괴물. 저도 그랬습니다. 아저씨들이나 좋아하는 유행 지난 시리즈 아닌가 싶었고, 유튜브 쇼츠에서 프레데터 요약 영상이 자꾸 떠서 호기심이 생기긴 했지만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감독 댄 트라첸버그는 이 시리즈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립니다. '프레이(Prey)'와 '프레데터: 킬러 오브 킬러스(Killer of Killers)'에 이어 세 번째로 야우차 세계관을 다루는 이번 작품에서, 트라첸버그는 주인공을 아예 야우차 종족으로 바꿔버립니다. 프랜차이즈 역사상 처음 있는 시도입니다. 야우차(Yautja)는 프레데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외계 종족의 공식 명칭으로, 명예와 사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전사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 '덱'은 이 야우차 클랜에서 추방된 어린 프레데터입니다. 클랜이란 야우차 사회의 씨족 단위로, 이 집단에서 쫓겨났다는 건 곧 사냥꾼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했다는 의미입니다. 덱은 가장 위험한 외계 행성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저도 학교나 학원에서 맨날 성적으로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데, 우주 괴물도 똑같은 고민을 한다는 게 뭔가 웃기면서도 은근히 공감이 갔습니다.
특히 초반에 덱의 송곳니가 하나 없다는 설정이 조용히 깔리는데, 이게 형제 관계와 맞물려 나중에 중요한 플롯 포인트로 돌아옵니다. 플롯 포인트(Plot Point)란 이야기의 흐름을 전환시키는 핵심 사건이나 장치를 뜻합니다. 단순하지만 딱 필요한 순간에 터지는, 교과서적인 연출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아, 이 이빨 복선이었구나" 하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덱과 티아 — 잔혹한 영화에 따뜻함이 끼어든 이유
사실 이번 영화에서 제일 예상 밖이었던 건 '티아'라는 캐릭터였습니다. 웨이랜드-유타니(Weyland-Yutani) 기업 소속의 합성 인간으로, 엘 패닝(Elle Fanning)이 연기합니다. 합성 인간이란 SF 세계관에서 인간을 모방해 만들어진 인조 생명체를 가리키며, '에이리언(Alien)' 시리즈에서 먼저 등장한 개념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프레데터 영화에서 웬 순진하고 착한 로봇이 나오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티아와 덱이 같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영화 전체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집니다. 잔인하고 어두운 액션 사이에 따뜻한 공기가 끼어드는 느낌이랄까요. 극장에서 티아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관객들이 살짝 풀어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앉았던 자리 주변에 나이 많은 형들이나 아저씨들이 많았는데, 그분들도 티아 장면에서는 표정이 부드러워지는 게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티아가 그냥 보호받는 짐덩어리로 끝나느냐, 그건 절대 아닙니다. 후반부에 티아가 보여주는 전투 장면은 솔직히 주인공 덱보다 더 임팩트가 컸습니다. 극장 안이 조용해질 정도로 다들 집중했고, 저도 들고 있던 팝콘 통을 내려놓고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패닝의 연기력이 그 반전을 완벽하게 받쳐줬습니다.
덱과 티아의 관계는 트라첸버그 연출의 핵심인 '감정적 중심'을 만들어내는 장치입니다. '프레이'의 나루처럼, 이번 영화도 싸워야 할 이유가 있는 캐릭터를 앞세우는 구조입니다. 덱은 증명해야 하고, 티아는 자신이 무엇인지 이해해가는 중입니다. 둘 다 아직 세상을 배우는 중이라는 공통점이 관객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깁니다.
덱이 중간에 어설프게 농담을 던지는 장면이 있는데, 확실히 썰렁하고 살짝 오글거립니다. 그런데 이 어색함이 오히려 캐릭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줍니다. 터미네이터 같은 어색한 유머처럼요. 야우차가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상, 덱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는 시도 자체는 호감으로 읽혔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냥꾼의 모습이랄까요.
야우차 세계관 — 프랜차이즈 7편째, 이번엔 뭐가 다른가
프레데터 시리즈는 1987년 1편 이후 수많은 후속작을 거쳤지만, 원작의 강렬함을 제대로 재현한 작품이 드물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프랜차이즈(Franchise)란 하나의 원작 IP를 기반으로 이어지는 시리즈 전체를 뜻하는 영화 산업 용어입니다. 7편까지 이어지는 동안 수많은 변주가 있었고, 실패도 많았습니다. 제가 직접 시리즈를 다 본 건 아니지만, 유튜브 요약본만 봐도 퀄리티 편차가 꽤 크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번 작품이 기존 시리즈와 다른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주인공이 인간이 아닌 야우차(프레데터 종족) 자신이다. 사냥꾼의 시선에서 행성을 탐색하는 경험이 관객에게 낯설고 신선하다.
- 야우차 코덱스(Codex)라는 설정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코덱스는 야우차 종족의 성전과도 같은 규율 체계로, '킬러 오브 킬러스'에서 처음 언급된 개념이다. 이번 작품에서 사냥꾼 문화의 핵심 원칙으로 기능한다.
- 생물 디자인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쓰러진다. 덩굴 생물들이 등장하는데, 같은 죽음이 단 한 번도 반복되지 않는다. 제가 보면서 "어, 이번엔 어떻게 죽지?" 하며 집중하게 만드는 요소였습니다.
- '에이리언(Alien)' 프랜차이즈와 연결되는 이스터에그가 삽입돼 있다. 이스터에그(Easter Egg)란 창작물 안에 숨겨진 비밀 요소나 팬을 위한 참조를 뜻합니다. 같은 세계관 팬이라면 반가운 장면들이 있습니다.
비주얼 면에서도 볼거리가 충분합니다. 외계 행성의 풍경과 이상하게 생긴 식물들, 야생 괴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아바타(Avatar)'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SF 영화보다는 눈이 즐거웠습니다. 4D로 봤으면 진짜 대박이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영화 등급이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점도 짚고 넘어갈 만합니다. 배경이 외계 행성이라 희생자가 모두 외계 생물이고, 피도 초록색 외계 액체로 표현됩니다. 만약 동일한 장면에서 희생자가 인간이었다면 단번에 청소년 관람불가를 받았을 수위입니다. 징그러운 걸 잘 못 보는 편인 제가 눈 안 가리고 끝까지 봤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댄 트라첸버그가 이 시리즈를 통해 구축하고 있는 방향성은 꽤 명확합니다. '프레이'는 증명해야 하는 주인공 구조로 신선함을 찾았고, '킬러 오브 킬러스'는 야우차 문화 자체를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땅'은 그 사냥꾼 자신을 주인공으로 세운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입니다. 트라첸버그 본인이 말하는 연출 원칙 중 하나인 괴물을 너무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 방식도 이번 작품에서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이 '상어를 보여주지 말라'는 원칙은 알프레드 히치콕과 스티븐 스필버그가 즐겨 사용한 공포 연출의 고전 법칙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무섭다는 발상에서 출발합니다.
집에 오는 길에 친구랑 프레데터 기술을 흉내 내며 한참을 떠들었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평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프레데터 시리즈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들도 부담 없이 입문할 수 있는 작품이고, 오랜 팬이라면 야우차 코덱스 설정과 이스터에그들로 더 즐겁게 볼 수 있습니다. 주말에 친구와 극장 갈 계획이 있다면, 고민 없이 예매하셔도 됩니다.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은 관람이었습니다.
--- 참고: https://kr.ign.com/predator-badlands/13982/peuredeteo-jugeumyi-ddang-rib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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