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 (가족 케미, 육아 공감, 히어로 액션)
솔직히 극장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행성 하나쯤은 날려야 마블이지!" 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런데 막상 불이 꺼지고 화면이 켜지는 순간, 버블카와 우주 시대 건축물이 펼쳐지는 복고풍 미래 감성에 살짝 당황했습니다. 이건 제가 기대했던 그 마블이 맞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2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극장을 나오면서 마음 한켠이 이상하게 몽글몽글해졌습니다. 무언가가 와닿았는데, 처음에는 그게 뭔지 잘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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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판타스틱 4 공식 포스터 |
가족 케미, 이게 진짜 팀인가요?
마블 영화를 오래 봐온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처음 보는 히어로 팀이 극 초반부터 '찐 가족'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얼마나 드문지를요.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은 그 드문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리드 리처즈(페드로 파스칼), 수 스톰(바네사 커비), 조니 스톰(조셉 퀸), 벤 그림(에번 모스배크랙), 이 네 명이 함께 있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계속 "저게 연기가 맞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벤과 조니의 콤비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삼촌 콤비'라는 수식어가 딱 맞습니다. 벤 그림이 씽(Thing)으로 변한 모습인데도 저 둘이 같이 있으면 웃음이 터지는 장면들이 꽤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옆자리 관객도 같이 웃는 게 느껴졌으니까요. 그 공기 자체가 달랐습니다.
반면 리드 리처즈를 연기한 페드로 파스칼은 좀 다른 결로 다가옵니다.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Marvel Cinematic Universe)란 마블이 영화와 드라마를 하나의 연결된 세계관으로 묶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인데, 그 안에서 리드는 앞으로 수십 편의 이야기를 이끌어야 할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서의 리드는 크게 성장하거나 변하지 않습니다. 일부에서는 그게 아쉽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처음 만나는 캐릭터에게 너무 많은 걸 쑤셔 넣는 것보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편이 더 현명하니까요.
그나저나 이 영화의 진짜 하드캐리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두말할 것 없이 수 스톰입니다. 리드, 조니, 벤이 위기에 처하거나 무력화될 때마다 수가 등장해 상황을 정리합니다. 심지어 진통 중인 상태에서도 가족을 구해내는 장면은 제가 직접 보면서 진짜 입이 벌어졌습니다. 바네사 커비는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에서도 가장 강렬했던 배우인데, 이번에도 그 존재감은 여전합니다.
육아 공감, 갤럭투스가 임신 테스트기라고요?
이 부분이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예상 밖이었던 지점입니다. 갤럭투스(Galactus)는 마블 코믹스 원작에 등장하는 행성을 집어삼키는 거대 우주 존재입니다. 이 영화에서 갤럭투스는 지구를 파괴하기 전에 먼저 전령인 실버 서퍼(줄리아 가너)를 보내 경고를 전합니다. 그 경고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웃음부터 나왔는데, 곧바로 멍해졌습니다.
실버 서퍼가 대기권을 뚫고 내려오면서 "주의하세요, 곧 당신의 세계가 삼켜질 것입니다"라고 외치는 그 구도가,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 줄이 뜨는 순간과 묘하게 겹쳤거든요. 제가 처음 아이 소식을 들었을 때의 그 감정,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폭발하던 그 순간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앞으로 이 세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는 그 느낌 말입니다.
영화 후반부에 리드와 수가 크게 충돌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수가 보여주는 분노와 탈진이 뒤섞인 감정은, 신생아를 처음 키울 때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그 벼랑 끝 감정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비슷한 상황을 겪었고, 그때의 감정이 스크린 위에 그대로 재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감독 맷 샤크먼이 '부모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놓은 건 분명히 영리한 선택입니다. 다만 그 표현이 꽤 직접적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아래 장면들이 특히 그랬습니다.
- 실버 서퍼의 등장 — 갤럭투스가 온다는 경고, 즉 '세계가 뒤집힐 것이라는 예고'가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처럼 묘사됩니다.
- 리드와 수의 부부 싸움 —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무너지는 아버지, 분노와 지침이 쌓인 어머니의 감정이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집니다.
- 수의 진통 중 전투 — 신체적으로 가장 극한의 순간에도 가족을 지켜내는 모습은 출산 직후 부모의 감정 에너지를 그대로 담아낸 장면입니다.
- 갤럭투스 협상 씬 —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면서도 '이게 삶의 끝은 아니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리드와 수의 태도가 신생아 부모의 심리와 평행을 이룹니다.
레트로퓨처리즘(retrofuturism)이라는 개념도 이 영화에서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레트로퓨처리즘이란 과거의 시선으로 상상했던 미래를 현재 시점에서 구현하는 미학적 양식으로, 1960~70년대 SF 분위기의 버블카, 우주 기지 디자인, 원색 의상 등이 그 예입니다. 828 지구의 세계관이 이 레트로퓨처리즘을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덕분에 영화 전체가 만화책을 실사화한 것 같은 독특한 질감을 냅니다. 이 설정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이 부분이 영화의 세계관을 빠르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고 봤습니다.
히어로 액션, 화면보다 음악이 더 뜨거웠습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액션의 밀도는 높지 않습니다. MCU 영화에서 흔히 기대하는 감정적 클라이맥스, 즉 눈물이 차오르는 희생 장면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생존 위기 같은 순간은 뚜렷하게 없습니다. 인피니티 워(Infinity War)처럼 이야기 전체를 뒤흔드는 충격도 없고, 토르: 라그나로크처럼 기존 설정을 과감하게 부수는 비장함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단 한 번, 진짜 '히어로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확 올라오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판타스틱 4가 갤럭투스와 협상하기 위해 우주로 출발하는 장면입니다. 로켓이 발사되고, 연기와 불꽃이 치솟고, 중력을 뚫고 미지의 공간으로 나아가는 그 순간에 작곡가 마이클 지아키노의 음악이 깔립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들었는데, 그 음악 하나가 2시간 동안 쌓인 감정들을 한꺼번에 끌어올렸습니다.
오케스트라 스코어(orchestral score)란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영화 음악을 말하는데, 지아키노는 이 장면에서 특유의 웅장하고 서사적인 오케스트라 스코어를 통해 화면이 하지 못한 일을 해냈습니다. 화면보다 음악이 더 뜨거웠다는 게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그게 솔직한 제 경험이었습니다. 마이클 지아키노의 작업 방식이 궁금한 분은 IMDb의 마이클 지아키노 페이지에서 그의 필모그래피를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액션 분량이 적다는 건 단점이라기보다는 의도된 선택에 가깝습니다. 앞으로 MCU 페이즈 6의 핵심인 둠스데이(Doomsday)와 시크릿 워즈(Secret Wars)를 향해 달려가야 할 캐릭터들인 만큼, 지금 이 첫 영화에서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충분히 보여주는 게 더 중요했을 겁니다.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IGN 코리아의 공식 리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슈퍼히어로 영화 특유의 '만화책을 찢고 나온 듯한' 인상적인 이미지, 강한 에너지와 감정이 동시에 폭발하며 뇌리에 박히는 그런 장면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 갈증은 다음 작품으로 미뤄진 셈입니다.
결국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은 '위대한 도약'이라기보다는 '탄탄한 첫걸음'입니다. 37편의 영화와 14개의 디즈니+ 시리즈가 쌓아온 MCU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이 네 명이 왜 함께여야 하는지를 차분하게 설득하는 영화입니다. 화려한 폭발보다 조용한 공감이 더 오래 남는 취향이라면, 극장에 가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 참고: https://kr.ign.com/the-fantastic-four-first-steps/13554/review/pantaseutig-4-saeroun-culbal-rib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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