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라이언 고슬링, 로키, 촬영)
156분짜리 우주 영화라길래 솔직히 콜라를 제일 작은 걸로 샀습니다. 화장실 가고 싶을까 봐서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그게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제가 예상했던 것과 실제가 완전히 달랐던 영화입니다. 인터스텔라처럼 머리 아프고 심각한 영화일 거라 지레 짐작했는데, 초반부터 팝콘 먹다 사레들릴 뻔했거든요.
![]() |
|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공식포스터 |
라이언 고슬링, 진짜 이 영화에 어울리는 사람이 맞나 싶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감독인 필 로드와 크리스토퍼 밀러는 2017년에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를 만들다가 창작의 견해차로 중간 하차한 전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후로 실사 영화를 거의 안 찍었던 콤비인데, 갑자기 이런 스케일의 우주 대서사시를 들고 나온 겁니다. '이 사람들이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는 중학교 과학교사 출신입니다. 영화는 그가 기억상실증(자신이 누구인지, 왜 우주에 있는지 기억을 잃은 상태)에 걸린 채 헤일메리호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식도에 급식 튜브가 꽂혀 있고, 주위에는 이미 숨진 승무원들이 있습니다. 상황만 보면 공포 영화 오프닝인데, 이상하게 웃깁니다.
라이언 고슬링이 자신이 믿어왔던 학문적 가설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닫고 "내 말이 다 틀렸고, 모든 게 잘못됐다"며 신음하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그 찌질함이 너무 현실적이라 오히려 빵 터졌습니다. 보통 이런 영화의 주인공은 절망 속에서도 결연한 표정을 짓는데, 고슬링은 그냥 제대로 무너집니다. 자의식을 내려놓는 연기를 이렇게 편안하게 하는 배우가 많지 않다는 걸, 이 영화를 보고 다시 확인했습니다.
플래시백(과거 회상 장면)을 활용해 그레이스가 왜 이 임무에 오게 됐는지를 조금씩 보여주는 구조도 처음엔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기억상실증이라는 설정이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관객이 그레이스와 같은 속도로 상황을 파악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쓰인 겁니다. 이건 제가 직접 극장에서 경험해보고 나서야 이해된 부분입니다. 미리 줄거리를 읽고 가면 절반은 날아가는 재미거든요.
로키, 입이 없는데 이렇게 존재감이 클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외계인 캐릭터라고 해서 CG로 떡칠된 괴물이 나오거나, 아니면 무표정한 인형 같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로키는 달랐습니다. 에리드인(타우 세티 항성계 출신의 외계 생명체)인 로키는 수석 퍼페티어(인형 연기 전문가) 제임스 오티즈가 직접 몸으로 움직임을 연기했고, 그게 화면에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입이 없는 캐릭터인데 감정이 읽힙니다. 미세한 몸짓 하나로 짜증인지, 기대인지, 당황인지가 구분됩니다. 필 로드와 크리스토퍼 밀러가 오티즈의 현장 연기 목소리를 그대로 최종 편집본에 유지하기로 했다는 결정도 좋았습니다. 컴퓨터로 번역되는 설정 안에서 오티즈의 목소리 톤이 살아 있으니, 로키가 단순한 시각 효과물이 아니라 실제 배우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제가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그레이스와 로키가 처음에 서로 짜증 내며 티격태격하다가 점점 편안해지는 과정입니다.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려운 사람이라면 아마 이 장면들이 유독 찡하게 느껴질 겁니다. 저는 솔직히 은하계의 별이 꺼지는 미션보다 말도 안 통하는 외계인이랑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 더 벅차게 느껴졌습니다.
두 캐릭터가 쌓아가는 관계에서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 있습니다. 원작 소설의 저자 앤디 위어가 글에서 늘 강조해온 것처럼, 다른 관점과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 서로를 존중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로키는 입이 없는데도 이 영화에서 제일 직설적인 캐릭터입니다. 그 아이러니가 꽤 웃겼습니다.
촬영이 이 영화를 극장용으로 만드는 이유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 저는 이 영화가 스트리밍으로 나오면 그때 봐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이 틀렸습니다. <듄> 시리즈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한 그레이그 프레이저가 카메라를 잡았는데, 이 사람이 빛을 다루는 방식이 다른 SF 영화들과 차원이 다릅니다.
아스트로파지(별의 에너지를 먹고 사는 외계 미생물로, 이 영화의 핵심 위협 요소)는 우주 공간의 적외선(눈에 보이지 않는 파장의 열 복사 에너지) 광선에서 발견됩니다. 이 설정을 그레이그 프레이저는 시각적으로 풀어내는데, 빛을 굴절시키고 휘게 하는 방식으로 프레임에 깊이를 만듭니다. 후반부에 타우 세티 행성 근처에서 아스트로파지 떼를 적외선 스코프로 보여주는 장면은 제 경험상 이건 진짜 극장 화면이 아니면 반도 안 산다고 확신합니다.
다만 영화에서 아쉬웠던 부분도 솔직히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156분이라는 러닝타임이 후반부로 갈수록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초반에는 지구 플래시백이 그레이스의 고립감을 풀어주는 역할을 잘 했는데, 3막에서는 이미 우주 임무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리는 상황에서 회상 장면이 자꾸 끊어들어 옵니다. 총책임자인 에바 스트라트(산드라 휠러)가 해리 스타일스의 "Sign of the Times"를 가라오케에서 우울하게 부르는 장면도, 저는 솔직히 '저게 대체 무슨 맥락이지?' 싶어서 고개를 갸웃하게 됐습니다. 산드라 휠러의 연기 자체는 훌륭한데, 캐릭터에 충분한 시간을 쏟지 않았다는 인상이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를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그레이그 프레이저의 촬영은 스트리밍 화면에서 절반의 위력밖에 안 납니다. 우주 풍경이나 아스트로파지 시퀀스는 큰 화면에서 봐야 의미가 있습니다.
- 로키와 그레이스의 케미는 소리와 함께 극장 공간에서 경험할 때 더 살아납니다. 특히 로키의 목소리 연기가 공간감을 탑니다.
- 초반 30분의 웃음 포인트들은 주변 관객과 함께 웃을 때 배로 재미있습니다. 혼자 집에서 보면 반응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결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 그리고 다 같이 힘을 합쳐야 뭐든 해낸다는 것. 뻔한 메시지인데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레이스와 로키가 쌓아올린 관계의 무게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3막이 조금 흔들리더라도, 표값이 전혀 아깝지 않은 영화입니다. SF에 관심이 있다면, 아직 극장 상영 중일 때 보러 가시는 걸 권합니다.
--- 참고: https://kr.ign.com/project-hail-mary/14499/review/peurojegteu-heilmeri-ribyu https://www.andyweirauthor.com.jpg)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