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후 뼈의 사원 (좀비, 광신도, 랄프파인즈)

좀비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좀비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극장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뒷자리 남성이 "올해 최악의 영화 논쟁은 이걸로 종결"이라고 외쳤을 때, 저는 그가 영화의 핵심을 완전히 비껴갔다고 느꼈습니다. 기괴하고 철학적인 공포를 즐기는 분이라면, 이 영화는 올해 가장 묘한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공식 포스터 사진
영화 28년후 :뼈의 사원 공식포스터

좀비보다 무서운 것들, 이 영화가 고른 소재

이 영화를 둘러싸고 가장 많이 오가는 질문이 있습니다. "좀비 영화에 왜 좀비가 별로 안 나오냐"는 것입니다. 광신도 집단이 멀쩡한 생존자들을 학살하는 장면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분명 있고, 그 감정 자체는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런데 저는 그 거부감이야말로 이 영화가 의도한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괴물 장르(몬스터 장르)란 단순히 무서운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괴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들여다보는 형식입니다. 쉽게 말하면, 감염된 좀비보다 스스로 선택해서 타인을 해치는 인간이 더 소름 돋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작인 '28년 후'의 결말에서 바로 이어지는 이번 작품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지미 파'라 불리는 집단이 저지르는 폭력입니다. 그들은 감염자가 아닙니다. 자신들만의 논리로 뭉친, 철저히 이성적인 인간들입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는 내내 위가 불편했던 건, 단순히 잔인해서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각본가 알렉스 가랜드가 이 시리즈를 위해 300페이지에 달하는 대본을 집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두 편으로 분리되었다는 추측도 있지만, 두 영화가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로도 충분히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 분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이 세계관 안에서 두 가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나란히 놓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광신도와 감염자 사이, 잭 오코넬의 연기

잭 오코넬이 연기한 '지미 크리스탈'은 이 영화에서 가장 논란이 될 캐릭터입니다. 그를 단순한 악당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시스템이 무너진 사회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인물 유형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그의 연기는 압도적이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카리스마(charisma)란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연기였습니다. 카리스마란 특정 인물이 주변을 자신의 의지에 따르게 만드는 비범한 영향력을 뜻하는데, 지미 크리스탈은 그 힘을 폭력의 방향으로 조준합니다. 그의 추종자들인 '핑거스(The Fingers)'는 감염자와 거의 같은 상태입니다. 이성보다 복종이 앞서고, 질문하지 않으며, 집단의 논리만 따릅니다.

이 설정에는 실존 인물인 지미 새빌(Jimmy Savile)에 대한 참조가 담겨 있습니다. 영국 국민 방송인이었던 새빌은 수십 년간 성범죄를 저질러온 인물로, 사후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영화가 이 이름을 가져다 쓴 방식은 단순한 오마주가 아니라, 사회가 묵인한 권력자의 이면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영화가 가장 대담하게 현실을 건드리는 지점이라고 느꼈습니다.

이런 복잡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니아 다코스타 감독은 블랙 코미디(black comedy), 즉 어두운 현실을 웃음으로 비틀어 보여주는 기법을 능숙하게 섞어 넣습니다. 진지한 대화 도중 불길에 휩싸인 남자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거나, 면도 중에 사슴 머리가 끼어드는 장면에서 제가 실제로 극장에서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직후 느낀 찝찝함이 오히려 이 영화의 매력이었습니다.

랄프 파인즈, 말 없이 전달하는 것들

켈슨 박사 역할을 맡은 랄프 파인즈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어렵습니다. "랄프 파인즈는 훌륭하다"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아무 의미가 없는 문장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는 나쁜 영화에서도 훌륭할 수 있는 배우이니까요.

그런데 이번 연기는 결이 다릅니다. 강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그의 뒷모습, 축 처진 어깨만으로도 이미 이야기가 다 전달됩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말 한마디 없이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화려한 대사나 극적인 장치 없이 이 정도 감정을 끌어낼 수 있다는 걸 오랜만에 실감했습니다.

켈슨 박사와 알파 감염자 '삼손'이 만들어가는 관계는 이 영화에서 가장 섬세한 지점입니다. 알파 감염자(alpha infected)란 단순한 좀비와 달리 일정 수준의 자아와 감정 반응을 보이는 존재로, '28년 후'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입니다. 치 루이스페리가 연기한 삼손은 분노만 가득하던 전작과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켈슨과의 교류를 통해 훨씬 복잡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두 사람의 관계와 지미 잉크, 스파이크의 관계는 훌륭한 대비를 이룹니다. 한쪽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다른 쪽은 폭력적인 구조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음에도 각 관계가 서로 다른 색깔을 품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구조적 효율성을 보여줍니다.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음반 수집품 장면은 제 기준으로 올해 극장에서 본 가장 강렬한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극적인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그 장면에서, 파인즈의 연기와 음악의 조합은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방식으로 작동했습니다. 직접 보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매치 컷 한 번으로 영화 전체를 설명하다

이 영화의 시각적 연출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시각도 있고, 일부 이미지가 다소 노골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두 입장 모두 근거가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노골적인 이미지들이 오히려 효과적으로 느껴진 건, 등장인물들이 그걸 직접 지적하면서 자기 참조적(self-referential)으로 소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초반에 등장하는 매치 컷(match cut)이었습니다. 매치 컷이란 서로 다른 두 이미지가 형태나 움직임에서 유사성을 가질 때 이를 연결해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편집 기법입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뼈가 우주선으로 전환되는 장면이 가장 유명한 예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폐허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뼈로 만들어진 사원의 첨탑들과 나란히 배치됩니다. 죽어서 무너진 문명과, 죽음(뼈)으로 세워진 새 문명이 같은 형태로 겹쳐지는 순간,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단 몇 초 안에 다 전달됩니다. 저는 그 편집 하나를 보고 이 영화를 믿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 영화의 전체 미덕과 한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니아 다코스타 감독 특유의 망설임 없는 연출이 시리즈에 완전히 새로운 톤을 부여합니다.
  2. 잭 오코넬과 랄프 파인즈, 두 배우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영화의 무게를 나눠 지고 있어 균형이 잡혀 있습니다.
  3. 블랙 코미디와 잔혹한 공포가 함께 작동하면서, 영화가 특정 메시지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조율됩니다.
  4. 단, 전작 '28년 후'를 보지 않으면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시리즈 입문작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공포 영화 장르와 속편 구조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 분들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장르 분석 자료나, IGN 코리아의 원문 리뷰를 참고해 보시면 다양한 시각을 비교하실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는 좀비 장르에 무엇을 기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감염자와의 싸움을 원한다면 실망할 수 있고,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공포에 관심이 있다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을 영화입니다. 저는 후자였고, 덕분에 극장을 나오면서도 한참을 멍하니 걸었습니다. 전작을 아직 못 보신 분이라면 '28년 후'부터 챙겨 보시길 권합니다. 순서대로 보셔야 이 영화가 제대로 들립니다.

--- 참고: https://kr.ign.com/28-years-later-the-bone-temple/14210/review/28nyeon-hu-bbyeoyi-saweon-rib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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